요 6:1-13/ 오늘도 시작하는 사람
오늘도 시작하는 사람/요한복음 6장 1-13절
찬송: 351, 353, 508장
(요 6:)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마 14:13-21; 막 6:32-44; 눅9:10-17; 요 6:1-13)
퍼스트 펭귄 이란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모두가 머뭇거리고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을 의미합니다.
바다에는 펭귄의 먹잇감도 많지만 바다표범 같은 펭귄의 적도 많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이들은 잠시 머뭇거립니다. 모두가 우왕좌왕할때 먹이를 구하기 위해 차가운 바다로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이 있는데 이를 퍼스트 펭귄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두고 '리더'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도자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라고 말은 하지만 '먼저 뛰어들지는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는 퍼스트 펭귄과 같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안드레'라는 제자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중요한 몇 명의 인물이 보입니다. 큰 무리, 예수님, 그리고 빌립과 안드레,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먼저 큰 무리를 볼까요?
1~2절 말씀입니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큰 무리가 있습니다. 큰 무리가 예수를 끝까지 따르고 있었던 이유는 병자들에게 행하신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계신데, 그들은 걸어서 먼저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이 대단합니다 (마 14:3, 막 6:33).
이 무리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요하게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신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표적'을 구하는 그들은 동일한 기적만 구하게 됩니다. 다른 일들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매일 그 자리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저두요, 저두요’ 하는 것 같습니다. (마트시식코너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음'을 구하는 사람들은 더 큰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표적을 구하기보다 예수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실 기적을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을 볼까요?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5절: '눈을 들어'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위에 앉으신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군중들을 관심있게 지켜보셨습니다. 그들을 귀찮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도와줄 방법을 강구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6장에는 이 말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막 6:34, 개정)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비록 그들이 표적만을 구하는 믿음 없는 자들이었으며, 목자없는 양과 같이 광야를 유리하는 자들이었지만(마 9:36)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 꼴을 먹이실까 고민하시는 선한 목자가 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빌립이 있습니다.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 빌립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지만 그는 똑똑하고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여서 예수님의 능력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머리를 굴립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7절입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최소 200데나리온은 있어야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장정이 200일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큰 금액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본문을 보면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어디에서' 구할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얼마가' 있어야 떡을 구할 수 있겠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은 어디에서 구해야하지? 출처를 묻습니다. 누가 떡을 줄수 있지? 생명의 떡이 누구지? 라는 질문입니다. 공급처에 어딜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떡의 가격에 대해이야기합니다. 저는 없는데요 라고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예, 떡은 떡집에 있죠. 큰 공장이 필요하겠네요. 그런데 저는 그만한 능력이 없는데요.. 라는 거에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으니 예수님이 주셔야죠. 저희가 빵을 한번 구해볼까요? ' 이렇게 대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빌립은 몰려온 무리들을 보며 오천 명을 먹이는데 예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통해서 그가 자기 계산, 자기 생각 아래만 머물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만 바라보고 있으면 기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빌립아, 너는 내 제자가 맞지? 나와 항상 함께 있었지? 내가 누군지 알지? 내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 알지?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지?
병자들을 어떻게 도왔는지 보고 있지? 이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 자,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
예수님은 빌립을 '시험코자' 하셨습니다. 빌립을 유혹하여 죄에 빠뜨리고자 시험하신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강한 믿음을 심어 주시고자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왜 예수님의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게 되었을까요?
빌립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막 6:32)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안다면 계속해서 머뭇거리고 있을 수 없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보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에 다른 대답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목자 없는 양과같이 길을 잃고 다닙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바쁘게는 살아가는데, 왜 바쁘게 사는지 이유를 잘 모릅니다. 돈돈돈돈 하며 돈때문에 사는것 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는것 처럼보입니다.
200데나리온만 있으면 다 해결될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저들에게 필요한 것은 200데나리온이 아니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떡,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오병이어의 기적 다음에 '생명의 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5절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8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51절“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예수님은 빌립이 이것을 고백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십니다.
“구리와 남양주, 다산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면 좋겠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예수님, 우리교회가 재정이 이것뿐인데, 우리교회가 감당할수 없는 지역인데, 사람이 없는데, 무슨 빵을 먹이시려고 하셔요.”
여전히 우리는 공급처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교회는, 나는 못하겠습니다. 불가능해요.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빠지면 이백데나리온이 있다고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지만 믿음으로 시작했을때 배불리 먹고 만족하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작은 시작에서 출발합니다. 믿음이 큰것 같다구요? 믿음은 겨자씨 만한거에요.
백부장은 자신의 집에 와서 병든 종을 고쳐주시겠다는 예수님을 만류하고 '말씀만 하옵소서. 그래도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빌립은 그동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목격하고도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믿는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옥한흠목사님은 믿음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된 것처럼 행동해라' 믿고 행동하는 것‘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시작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드레는 예수님의 질문에 다르게 반응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8절-9절입니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였다는 설명을 부가하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시몬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인물이었습니다. 안드레가 성경에 나올때는 언제나 누군가를 예수님께로 데려오고 있습니다. 안드레는 그의 형제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께 데려왔을 때 베드로의 이름은 '게바'로 바뀌었습니다. 반석이란 뜻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에게 기적을 선물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빌립의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안을 찾아 다닙니다. 어딘가에 예수님의 답이 있을거 같습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가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가 예수님께 어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그마한 희망을 품게 됩니다.
작은것도 놓치지 않는 안드레의 모습입니다. 흔히 말하는 실낱같은 희망.. 그것으로도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작은 변화에 민감하십시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다가 그들에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감지하면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것으로 기적을 이루어 달라고 말씀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실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과 안드레는 12장 20-22절에 다시 한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안드레가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요 12:20-22)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먼저 시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네, 맞습니다. 이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빌립은 그를 향해 비웃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야고보를 보며 손가락질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측은히 여기며 ‘어린아이’를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에구, 이 귀여운 것.. ’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특하다고, 귀엽다고, 어처구니 없다고 바라보고 있는 그 장면이 보이십니까?
그런데, 야고보는 어린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후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안드레는 이 작은 것을 가지고도 일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의 행위를 보면 그야말로 인간적으로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부모가 돈문제로 기도하고 있는데, 걱정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돼지저금통을 갖고와서 이거라도 쓰세요. 하는 모습같습니다. 그때 부모의 마음이 어떠합니까?
예수님이 안드레를 바라보는 모습이 바로 그러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드레야말로 예수님의 질문을 올바르게 이해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 무엇인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잘것 없는 것이라도 예수님께 드리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드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아이가 자기 먹으려고 가져온 도시락에 주목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께 갑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져갑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보리떡 작은 덩어리 5개, 소금에 절여진 작은 생선 두 마리.
저는 지금도 기억나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모은 달란트를 선교사님을 위한 선교헌금으로 드린 아이입니다. 시에라리온에 학교를 세우고 그곳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장학헌금을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30명쯤 되는 아이들이 70만원이 넘는 헌금을 만들었습니다. 7명의 아이들을 후원했습니다.
지금은 그 헌금이 씨앗이 되어서 시에라리온에 유치원이 생기고, 초등학교가 생기고 중학교가 생겼습니다.
선교사님이 가는 곳곳마다 그 아이의 믿음을 자랑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때에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여인에게 하신 말씀처럼 선교사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이 아이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 26:13, 개정)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자꾸만 거창한 어떤 일들을 떠올립니다.
큰 돈을 들여서 비싼 비품을 하나사는 것, 학교하나를 짓거나 남들이 봐도 깜짝 놀랄만한 무엇을 하는 것,
이런것들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28절) 사람들이 예수님께 심각하게 묻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셔도 다 들을 것 같고,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29절입니다.
(요 6:29,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따라다니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자리에 있으면 내가 기적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오늘 그 믿음의 고백을 오늘도 시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 설교문을 작성해 놓고 묵상 중에 있는데 교회 주보를 찍는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주보에 설교 제목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인쇄소 직원이 생각하기에 평상시에는 이보다 훨씬 긴 제목이었는데 제목이 너무 짧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전화했더니 목사님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됩니다.”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이 되어 인쇄되어 나온 주보를 본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설교 제목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거면 됩니다’라고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순간 당황했지만 이 제목을 되뇌다보니 오히려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너의 목자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안드레는 불가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에서 사태를 바라보았습니다. 시작부터 기가 죽어서 안될 것이라고 판단한 빌립과는 달리 비록 작은 도시락이지만 이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그는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던 도시락을 예수님께 소개한 것입니다.
오늘 눈 한번 딱 감고 믿음으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보시지 않겠습니까?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그때 한번 해볼걸, 해볼걸, 걸걸걸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붙잡았던 안드레의 오늘도 뭐든 시작하고자 하는 행동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5월 26일과 6월 2일 새생명축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하는 날입니다. 태신자를 작정하는 것, 그것이 시작입니다. 전도지 한 장 들고 나가는 것, 그것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소보다 한가지 행동 더 해보는 것, 그래서 기적의 현장에 서 보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아내에게,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이웃에게 예수님을 소개해 보는 것.. 시작해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안드레의 소박한 믿음과 자그마한 것이라도 바치는 어린 아이의 헌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더해졌을 때 커다란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믿음의 크기는 중요치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가져갔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랬더니 어떤일이 일어났습니까? 11절입니다.
(요 6:11, 개정)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1절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는 구체적인 행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앉은 자들에게 떼어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축사는 감사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감사기도입니다. 특별한 기도가 아닙니다. 평소의 식사기도와 동일한 감사기도입니다. 그리고 나눠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자에게 풍성히 주실 수 있었습니다. 왜요? 그분이 예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참 멋있지 않습니까? 원대로 주시니라..
이것은 후에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셨던 행위와 일치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한가지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6장 35절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은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영육간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때문에 다 채워주십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체험했던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무엇이라고 고백합니까?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세계적 물리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요 6:12-13, 개정)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될까 안될까 걱정하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오늘도 시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예수님께로 데려오는 사람이 되십시오.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으시킵니다. 그 능력이 주님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오늘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주님, 제 마음에 태신자를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것을 감사드립니다'라는 감사에서 기적은 출발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여러분의 ‘시작’으로 오늘도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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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 복음을 가진 사람들 로마서 1장 16-17절 (롬 1:16-17) 교사연 | 작은씨앗 | 153 | 2023.06.03 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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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시 100:1-5 /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요? | 관리자 | 208 | 2019.10.01 0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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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 딤전 4:6-13 / 제목: 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 관리자 | 385 | 2018.11.28 01:23 |
35 | 사 47:1-15 / 나뿐 소리, 예뿐소리/ 누구로 살아야 할까요? | 관리자 | 292 | 2018.11.28 01:22 |
34 | 일이 꼬여만 갈 때 아멘! 합시다./고후 1:12-22절 | 관리자 | 451 | 2018.11.28 01:21 |
33 | 시편 25:1-22절, '주를 바라보았더니' | 관리자 | 398 | 2018.11.28 01:19 |
32 |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슥 4:1-7) | jmr0112 | 290 | 2016.11.28 2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