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47:1-15 / 나뿐 소리, 예뿐소리/ 누구로 살아야 할까요?
사 47:1-15 / 나뿐 소리, 예뿐소리/ 누구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예언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이유를 찾아보면서 우리가 들어야 할 소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바벨론은 이사야서가 기록될 당시에는 위협세력이 아니었습니다. 앗수르 뒤에 일어난 신흥제국입니다.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서 이미 점령을 당했고 남유다는 건재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남유다에게 직접적인 위협은 앗수르이고, 바벨론은 별로 존재감 없는 나라가 바벨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차 약 150년 후의 일을 미리 계시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은 느부갓네살 때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중근동 지역의 세력을 얻으며 유다를 점령시킵니다. 주전 586년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바사제국(페르시아)에 의해 주전 539년에 멸망을 당합니다. 즉, 바벨론은 90년을 넘기지 못하고 유다가 멸망한 후 약 50년후에 바벨론은 바사제국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엄청난 바벨론 제국이 오랫동안 버틸것같고 온 세계를 쥐고 흔들 것 같았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립니다. 그 이유를 본문을 통해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 들어야 할 소리와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구분하지 못함..>
앗수르 -> 바벨론 -> 바사(페르시아)
이렇게 된 데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영적으로 보면 원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는 어떤 민족도, 어떤 개인도 싫어하십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미신, 우상, 세상을 섬기면서도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한다면 포기하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는 제국의 몰락, 개인의 몰락입니다. 사업이 망하기 전에는 언제나 도덕적 파산이 먼저 옵니다. 한 기업이, 한 사회가 그냥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을 몰락시키고 제국을 멸망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국의 멸망은 우연이 아닙니다. 한 시대의 종말도 우연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십니다.
1절 :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바벨론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처녀딸’ 이라고 부릅니다. 바벨론은 어떤 나라로부터 침략도 위협도 받지 않은 강대국이이라는 것입니다. 공격받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딸”라는 것은 출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만 ‘내려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국 바벨론을 향해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티끌’에 앉으라고 말씀합니다. 왕이 땅바닥에 앉을때는 망했을 때 입니다. ‘딸 갈대아’도 같은 말입니다. ‘보좌가 없어졌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주신분도 하나님이시지만 거두어가신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욥 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주시든 주시지 않든 여호와의 이름은 찬송을 받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땅에 앉으라” 그리고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름답다고 칭함을 받지 못할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3절 / 맷돌을 갈고 너울(베일)을 벗고 치마를 걷고 다리를 드러낸다는 것은 포로의 모습, 끌려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노예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아하게 걷는 그 모습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처참한 심판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보복하고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한사람도 남아있게 하지 않겠다. 하나님의 심판에 한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4절/“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마치 소리를 높여서 부르는 노래같습니다. 모두 앞에 선포하는 듯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멸망을 이야기하시면서 멸망시킬 수 있는분, 너희가 의지하는 것들이 아닌 그분의 진짜인분, 그 이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고 표현합니다.
보잘 것 없던 바벨론을 세워주신 분, 비참함으로 끌어내리신 분 그분의 이름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 “저 성벽을 향해 전진하라 주님은 우리 대장되신다.” “문들아 머리들어라 영광의 왕이 들어가신다”
5-7절: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런데 바벨론의 문제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다시 비참함, 어둠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감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역사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벨론은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섭리를 몰라서 실수를 하고 불신앙과 우상숭배에 빠져 포로로 잡혀가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믿는 나라나 믿지 않는 나라나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국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권력도 쓰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내가 잘될 때, 내가 잘나가고, 내가 권력을 가졌을 때는 내가 잘나고 내가 똑똑해서 내가 훌륭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 알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잡거나 사업이 잘 되면 자기가 잘나고 똑똑해서,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줄 압니다. 그 때 빠지기 쉬운 것이 교만이요 방자함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동일합니다.
내가 잘나고 훌륭해서 잘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자기 분수와 자기 한계를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마치 자기가 열국의 주권자인 듯이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심지어 무자비하게 노인들에게까지 멍에를 지우고 학대를 했습니다. 이런 행실이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은 또 다른 제국(바사-페르시아)을 들어 바벨론을 멸망시키십니다.
이어서 6-7절은 왜 바벨론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6절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내 백성에게 화가 났다. 나에게만 예배해야하는데 우상을 섬겼다. 내가 보낸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노했다. 그래서 너를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수단으로 택해서 특별한 권세를 주었다. 회개의 수단으로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은 어떻게 합니까 ? 하나님의 주신 권세에서 넘어서버립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합니다. 더 심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7절- ‘여주인이 되겠다’는 것은 청지기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행사하며 권세를 남용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왜 자신의 사명을 잊고 경고 망동해 진 것일까요? 왜 바벨론이 이처럼 오버하고 있을까요?
결국 8절은 바벨론의 가장 큰 죄가 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에 나왔던 모든 잘못들, 죄악들을 하나로 모아보니 그 죄가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보니 결국 여기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않고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들었던 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8절 –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다. 거짓된 소리를 들었습니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나는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않을 것이다.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9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코람데오 –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데, 내가 그 자리에서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결국 하나님은 없는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왜 악하다고 합니까? 모두가 비판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바벨론은 자신의 위치와 본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8절의 이 말은 바벨론이 할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바벨론에게는 거짓의 소리일 뿐입니다.
(사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이 소리는 10절에서도 동일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0절 – 스스로 이르기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다”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죄악가운데 있으면서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는 불신의 소리입니다.
(마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어떤 소리가 들리십니까? 교만의 소리입니다.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 네 지혜와 지식과 재산과 실력과 인기가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 위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정답이고 기준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아래에 두는 교만한 소리입니다.
(사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옛날 민혜경이라는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 질 수 있어요 <사랑하는 부모님,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원하셨어요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따라야 했었지요. 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지 않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삼가 했기에 언제나 나는 얌전하다고 칭찬받는 아이였지요 그것이 기쁘셨나요? 저 처럼 잃으시면서 부모님의 뜻대로 된 나로 생각 하셨나요? 부모님은 사랑을 다 주셨지만 나는 아직도 아쉬워 하는데 이렇게 그늘진 나의 마음을 그냥 버려 두지 마세요
*반복(내 인생은 나의 것~)” 여러분의 자녀가 만약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너도 크면 알 수 있어. 너도 너같은 애 낳아서 한번 고생해봐라..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내뜻, 내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에도 나는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벨론이 파멸의 길, 멸망의 길로 걷게 된 까닭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내삶의 주도권, 통제권을 내가 갖고자 하면 파멸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맡겨야 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 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 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 케 해 / 주 사랑 내 영혼에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살림좀 나아지셨습니까?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사단은 오늘도 내 귀에 속삭입니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우리는 잠시 맡은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맡기시기도 하시고, 자녀를 맡겨주시기도 합니다. 내 인생을 주인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내뜻이 아니라 ‘우리의 뜻’ ‘하나님의 뜻’ 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인생이 되라고 합니다.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우리의 죄 사함을 구하고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게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듣지 말아야 할 나쁜 말에 귀기울인 결과 바벨론의 말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화가 얼마나 큰지 12-15절까지 길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2]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13]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미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
젊어서부터 의지했던 주문, 주술을 다 갖고와서 몸부림 쳐봐라고 말씀합니다.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너의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민족들 다 동원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다 마른풀같이 다 타버리고 없어질 것이며 너를 구원할 자가 아무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을 한번 보세요. “네가 어릴 때부터 부려왔던 마법과 많은 요술을 갖고 어디 한번 버텨 보아라. 혹시 잘될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나를 겁나게 할지 누가 알겠느냐?” 이런 표현을 쓰신 것이 재미있습니다. 점도 쳐보고 마법도 행하고 요술도 부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를 구원하는지 너의 민족을 구원하는지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13절도 보세요.
“너는 네게 조언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싫증이 났다. 점성술사들과 달마다 예언해주는 별자리 전문가들을 나서서 해 보아라 그들이 네게 닥칠 일로부터 너를 구하게 해 보아라.”
당시 왕들은 점성술사나 별자리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습니다. 요즘에는 자문을 해주는 전문기관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전문가들은 전문지식에 의해서 망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보아라. 그들은 지푸라기 같아서 불에 타버릴 것이다. 그 불은 몸을 녹여 줄 정도의 숯불이 아니다. 옆에 앉아서 쬘 정도의 불이 아니다. 그들은 엄청난 불꽃의 힘에서 자기 스스로도 구해 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점성술사, 별자리를 보는 사람들, 마법을 행하는 사람, 요술을 행하는 사람들을 지푸라기 같다고 하십니다. 지푸라기는 불에 순식간에 타버립니다. 이 불은 옆에서 쬘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불이라는 것입니다.
15절 마지막절입니다.
“네게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네가 공을 들여 온 사람들, 네가 어릴 때부터 거래하던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 버려서 너를 구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네가 공들인 사람들, 네가 믿었던 사람들이 결국은 다 도망갈 것이고 너를 배신할 것이고 너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분이 누구시라는 것일까요? 그분이 누구시라구요?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을 4절에서 소개했습니다.
4절에서 말씀하신 그분, 그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입니다. 47장의 4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하나님이 심판은 하나님의 구원은 동시에 일어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구원입니다.
그 만군의 여호와는 어떤 분이십니까? 왜 이렇게까지 일하십니까? 46장 13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 46:13, 개정)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내가 택했고, 내가 세웠고, 권세를 주었고, 사용하였던 바벨론이 나를 배척했다. 나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하나님인것처럼 흉내내었다. 그래서 심판하겠다. 동시에 내 백성들을 구원해 낼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그들이 나의 영광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 맞습니까?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선언으로 인해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주이십니다. 우리가 입술을 벌려 외칠 때마다 거룩하신 하나님, 의의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소리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듣기 좋은 소리도 있지만 듣기 싫은 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들어야 할 소리라면 귀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 말씀하시는 소리에 귀기울이시고, 세상에 주는 달콤한 미혹의 소리에는 귀를 막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음성과 찬양이 가득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뿐인 나뿐소리가 아닌, 예뿐소리, 예수님뿐인 소리를 따라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얼굴가면 프린트”
여러분, 제가 누구로 보입니까? 왜 ‘황성구목사’로 보이는 것일까요? 이 가면뒤에 있는 제 본모습을 알기 때문입니다.
동물 탈인형을 쓰고 밖으로 나가면 아이들이 몰려옵니다. 그리고 다가와서 손을 내미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안고 사진을 찍기도 하며 행복합니다. 그러나 때리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하며 탈인형의 얼굴을 벗기려고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속에 누군가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매일 탈을 쓰고 사는 것 같습니다. 목사라는 탈, 집사, 권사라는 탈을 쓰고 성도라는 탈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있을 때는 좀 성도다운 표정, 행동을 하기도 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만 있을때는 본래의 모습, 성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면 어떻습니까? 결국 행동이나 말투등으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우리의 속사람으로 인해 드러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겉모습이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이 우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들려지는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음성에 귀기울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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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One Point 설교 작성법 | 관리자 | 734 | 2014.07.27 0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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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요일 4:7-11절 / 사랑이 여기 있어요! / 비법, 포장된 선물 / | 관리자 | 371 | 2018.11.28 01:24 |
38 | 시 18:31-50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뇨? | 관리자 | 475 | 2018.11.28 01:24 |
37 | 행 13:1-3 / 누가 그리스도인일까? | 관리자 | 332 | 2018.11.28 01:23 |
36 | 딤전 4:6-13 / 제목: 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 관리자 | 386 | 2018.11.28 01:23 |
>> | 사 47:1-15 / 나뿐 소리, 예뿐소리/ 누구로 살아야 할까요? | 관리자 | 293 | 2018.11.28 01:22 |
34 | 일이 꼬여만 갈 때 아멘! 합시다./고후 1:12-22절 | 관리자 | 452 | 2018.11.28 01:21 |
33 | 시편 25:1-22절, '주를 바라보았더니' | 관리자 | 398 | 2018.11.28 01:19 |
32 |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슥 4:1-7) | jmr0112 | 291 | 2016.11.28 2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