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6월 03일
본문: 로마서 1장 16-17절 제목: '복음을 가진 사람들’ [롬 1:16-17, 개정]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은 복음축제를 앞두고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우리가 교사로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복음’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에도 ‘복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구절이 115절이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대부분의 성경이 ‘복음’을 언급할 정도로 ‘복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복음’이 무엇인지 물으면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이 복음의 정의때문에 때문에 교파가 갈리기도 하고. 교리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단들도 ‘복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합니다. 그럼 우리가 하고자 하는 ‘복음축제’에서 말하는 ‘복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떤 축제를 하고 싶은 걸까요? 그동안 우리는 수년동안 연예인들을 초청하며 그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소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복음축제는 조금 특별하게 복음을 전해보려합니다. 연예인들이 만났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만났던 하나님,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축제를 열어보려 합니다. 그동안 듣게하고 보여주는 예수님이었다면, 2023년 꽃동산 복음축제는 부모님안에 거하시는 예수그리스도, 선생님 안에 계시는 예수그리스도, 할머니, 할아버지 안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하는 복음축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이들이 집앞에서 전도하는 분들의 입술을 통해, 교회 입구에서 안내하는 분들의 모습을 통해, 계단 곳곳에서 만나는 성도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축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한 가족된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온 가족이 함께하는 꽃동산 복음축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복음축제를 위한 기도회를 하면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복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가 하려고 하는 ‘복음축제’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입니다. 한국어로 기쁜소식, 영어로는 Good news 또는 gospel(복음). 굿 뉴스는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며, 가스펠은 [god + spel]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을 펴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복음서의 이름에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복음서의 중심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 예수그리스도가 복음의 핵심 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복음’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을 통해 ‘복음’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핵심구절이 바로 오늘 읽은 로마서 1장 16-17절입니다. 다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전한 이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의 복음의 소식은 마틴 루터를 회심케 했고 종교개혁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즉, 프로테스탄트, 개혁교회, 타락한 교회를 다시 주님의 몸된 ‘교회’로 회복시켰습니다. 죄의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루터가 로마로 갔습니다. 그의 나이 30대였습니다. 그는 동료 신부들과 함께 ‘스칼라 산타(성계단)’라는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28개의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면 모든 죄를 사함받는 다는 계단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 계단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시면서 올라가신 총독 관저의 계단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이 계단을 무릎으로 한번 오르내리면 15년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믿을 수 없는 신앙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지금도 순례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고통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로 성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면서 기도합니다. 내 몸의 고통을 느끼며 뭔가 뿌듯한 신앙의 희열을 느끼는 거죠. 루터도 이 계단을 오르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서너 개를 남겨두고 평소에 암송했던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이 섬광처럼 떠올랐습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런 행위로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당시 로마교회는 성례를 통해 불의한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만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이 말씀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의’는 ‘디카이오쉬네(Dikaiosune) 데오(Deo)’ 라고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디카이오쉬네는 ‘여겨준다. 인정해준다. 선포해준다’라는 단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내가 행위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리해도 여전히 죄가운데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격없는 나를, 모자라고 부족한 나를 ‘여겨주고, 인정해주고, 선포해준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내가 하나님의 기준에까지 이르기 위해 내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히브리어 ‘체덱’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단순히 윤리적으로 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덕적 기준에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맺은 양자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의미와 책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17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십니다.[창 17:7, 개정]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셨고, 범죄한 뒤에도 회개하면 그들을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행위가 하나님의 의‘라고 말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언약의 대상으로 여겨주시고 인정해주시고 선포해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1-22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의,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롬 3:21-22, 개정]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율법으로는 영원한 죽음, 멸망으로 가야하는 죄인이라는 것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지만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 즉, 율법외에 ’하나님의 다른 언약‘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차별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은혜,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바울은 하박국 2장 4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의는 ‘자기 스스로 의롭게 될 수도, 의를 가질 수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뜻 안에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다’ 는 뜻입니다. 외부에서부터 오는 의입니다. 우리 밖에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의’, 즉,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자랑하고 싶다’라는 말을 더 강하고 적극적으로 강조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 복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렇게 복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절)’ 나뿐만 아니라 이 복음을 믿는 누구든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더 쉬운말로 표현하면 누구든지 모든 믿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당시에 바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의미없는 미친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같은 유식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지성인이 십자가에서 죽은 한 사람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니 참 어리석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게 뭐라고, 그게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장래를 포기하고 저러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될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더 적극적으로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바울은 이 복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왜이렇게 까지 합니까? 왜 꼭 이렇게까지 해야합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왜 복음축제를 해야합니까? 왜 이렇게까지 전도해야 합니까? 노원구 뿐 아니라 의정부, 동두천, 별내, 남양주까지 왜 전해야 합니까? 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나에게 능력이 되었고,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능력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만약 복음이 나에게 아무런 능력이 되지 않았다면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복음에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전할수 없습니다. 한번 온다고, 와서 놀기만 하다가 가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떠들며 불평하면 됩니다. 잠깐의 설교를 듣고 어떻게 아이들이 변하느냐고 떠들고 불평하면 됩니다. 먹고, 놀고, 즐기고 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냐고 불평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 을 알고 있기 때문에 멈출 수 없습니다. 자랑하게 됩니다. [엡 1:19-20, 개정]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지극히 크심’ 즉 최상급의 단어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지극히 크심’이 한 영혼을 살리는 일에, 구원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 능력은 에베소서 1장 20절에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즉, 부활의 능력과 동일한 능력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음에서 일으키신 그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십자가 목걸이 장식 정도가 아닙니다. 영화에서 귀신들을 향해 십자가를 내밀며 ‘물러가라’고 외치는 정도의 능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마른뼈가 가득한 골자기를 보여주시면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 37:3)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겔 37:5, 개정]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마른 뼈들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생기를 먹기위해, 살아나기 위해 발버둥 쳤습니까?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마른 뼈들에게 살을 입히시고 가죽으로 덮으시고 생기를 넣으셨습니다. 그 뼈들은 살아난 후에야 자신에게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뼈의 마디마디가 붙고 살아날 때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골짜기 안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살아났습니다.과거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왜 죽게 되었는지, 왜 그곳에 무더기로 있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겔 37:6)” 하나님이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고전 1:21)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 복음은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구원얻기로 예정된 자를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믿음에 이르도록 하시고 거저 은혜의 선물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축제는 선물을 주려고 만드신 초청장을 보내는 날인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 3:6). 즉, 복음의 능력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능력인 이 복음은 복음 안에서 살아가게 능력이 있습니다.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로 일평생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바울과 같이 복음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복음을 전하다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평안하고 천사의 얼굴같이 되는 것. 바로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의’ 즉,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묻지도 않으시고 구별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돌고 초대장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축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롬 10:14-17, 개정]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우리는 ‘복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파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복된 소식,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3가지 기도제목을 두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먼저는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1. 나를 복음을 가진 사람으로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복음이 나를 살리는 복음임을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인정하게 하옵소서. 복음없는 자처럼 살아가는 자가 아닌, 복음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어 복음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환경탓하지 않고, 분위기 탓하지 않고, 사람탓, 남탓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이 부르시고 주께서 복음을 가진 사람으로 세워주심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2.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디카이오쉬네 데오’ 하나님의 의는 나의 자격이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겨주시고 인정해주시고 선포해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복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인 나에게 복음을 알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믿고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 약속안에 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매일 매일의 삶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나를 부르시고 만나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따르는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3. 복음을 자랑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복음, 나를 변화시킨 이 복음을 내 말과 행동과 삶을 통해 드러내게 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으로 죄로 인해 점점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밝혀 나가며 썩어져 가는 곳에 들어가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나를 보고,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보게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옵소서.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복된 소식을 날마다 자랑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4.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이 선포되게 하옵소서. 마른 뼈들을 향해 말씀을 대언했던 에스겔처럼 힘있게 선포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쫄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게 하옵소서. ‘내가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리라’ 주여, 생기를 불어넣어 주옵소서.
2023년 02월 27일
2004년부터 3년간 그곳에서 공부대학교·신학교, 성결운동으로 설립각종 부흥운동 모습과 다르지 않아과거 은혜 재현 기도하던 이들 많아▲애즈베리대학교 강당이 예배자들로 가득 찬 모습. ⓒ페이스북미국 켄터키주 애즈베리 대학교(Asbury University)에서 학생들의 예배와 기도가 며칠째 계속되고 SNS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도 이러한 열기가 전파돼 인근 대학교에서도 기도와 예배가 이어지면서, ‘부흥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현재 예배와 기도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애즈베리대학교 맞은편 애즈베리 신학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는 두 딸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장기영 교수(성결대)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기도의 응답’이자 눈물나는 부흥의 현장이다.장기영 교수는 “애즈베리라는 곳의 역사와 공동체 분위기를 예전부터 알았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이들을 그곳으로 보내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이전에 일으키셨던 부흥을 다시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했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다”며 “저희의 기도가 다른 분들이 쌓아온 기도에 비하면 0.1%도 안 되겠지만, 애즈베리에 자녀들을 보낸 분들이나 과거 애즈베리 부흥을 경험하거나 잘 아는 분들은 모두 그러한 부흥을 사모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울먹이기도 했다.2004년부터 3년 간 애즈베리 신학교(Asbury Theological Seminary)에서 대학원(MA) 과정을 수학한 장기영 교수는 “대학원 시절, ‘부흥은 길 건너편에서 건너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과거 이곳에서 일어난 부흥이 여러 차례 신학교가 아닌 대학교에서 시작돼, 신학교가 동참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라며 “애즈베리대학교와 신학교 둘 다 과거 성결운동의 열매로 세워진 학교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장기영 교수는 서울신대와 애즈베리 신학교,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나사렛 신학교(Nazarene Theological College) 등에서 공부했다. ⓒ장기영 교수 제공장 교수는 “대학교와 신학교 모두 가르치는 교수님들이 모두 경건하시고, 학교는 다르지만 서로 교류를 많이 하셨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 후 맞은편 신대원으로 가는 비율도 높았다”며 “신대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다 애즈베리대학교 총장을 18년 하신 분도 있다. 20세기 성결운동의 대표적 지도자로 꼽히는 데니스 킨로(Dennis F. Kinlaw) 총장님이다. 1970년대 일어났던 부흥은 그분이 총장이실 때 일어났다”고 말했다.그는 “애즈베리대학교는 교수·직원·학생 등 학교 전체 분위기가 기독교 사립대학이라는 정체성이 있고, 평신도 지도자를 길러낸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다”며 “미국 학교들 중 졸업생이 선교사로 헌신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부흥의 역사들이 일어난 곳이기에, 그런 분위기가 녹아 있다”고 전했다.또 “그래서 그런지 신학교와 대학교가 있는 윌모어(Wilmore) 지역은 작지만 90% 이상이 크리스천으로, 미국 전체에서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라며 “이곳은 미국인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은 지역으로 1-2위에 꼽힐 정도로 안전하고 사람들이 좋은 지역이다. 그게 다 부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애즈베리대학교에 있는 두 딸과도 관련 소식을 주고받았다는 그는 “부흥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전해들었다. 학생들 몇십 명으로 시작된 모임에 계속 숫자가 불어나고, 점점 외부에서 오는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며 “제가 웨슬리 전공이다 보니, ‘18세기 웨슬리 부흥운동의 재현인지’를 궁금해 하더라”고 말했다.▲야외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학생들 모습. 채플에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대기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페이스북장기영 교수는 “아이들에게 답하기를, 지금 일어나는 일이 오순절적 의미의 부흥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했다”며 “하지만 맨 처음 학생 중 한 명이 자기 죄를 고백한 뒤 여러 사람들의 뜨거운 기도로 이어지면서 시작됐다면, 우리나라 평양대부흥 운동을 비롯해 많은 부흥운동들이 시작된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고 설명했다.장 교수는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너희가 그런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든 그러지 못하든,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일임을 분명하게 믿고 체험으로 다가오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참여하길 바란다고 권면했다”며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도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으니, 분명히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계실 것”이라고 강조했다.실제로 애즈베리대학교에서 부흥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과거 1970년대에 부흥을 경험했고, 이런 부흥을 다시 일으켜 주시기를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한다.▲(왼쪽부터) 애즈베리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일대에 교통체증이 빚어진 모습, 채플실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장기영 교수 제공애즈베리 대학교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1905년과 1908년을 비롯해, 1950년과 1958년, 1970년 등 반복적으로 예배와 기도 운동, 즉 부흥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인근으로까지 퍼진 적이 있다.그는 “미국이 ‘기독교 이후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속화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고 교회조차 세속화되던 중, 교회를 염려하고 과거 은혜의 경험이 재현되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며 “과거 세대들은 그런 것을 경험했지만 젊은이들은 부흥을 과거 이야기로만 듣고 실제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이번 부흥의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장기영 교수는 “아이들 말로는 친구들 얼굴이 달라졌다고 한다. 친구들이 정말 좋아하고, 난리났다는 표현들을 쓰고 있다고 한다”며 “유튜브나 페이스북 간증들을 봐도 초기에는 몇몇 분들만 올렸지만, 지금은 교수진과 목회자, 외부 참여자들도 ‘그곳에서 특별한 평안을 느꼈다, 성령의 임재를 느꼈다, 회개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채플 안에서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강한 바람을 느꼈다는 말을 부모가 SNS에 게시하고 있다”고 했다.▲채플실로 들어갈 수 없어 야외에서 기도하는 학생들. ⓒ장기영 교수 제공이에 대해 “과거 부흥운동에서 나타났던 외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내적 현상들은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첫 시작이 오순절적이든 어떻든 규정짓는 것을 떠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부흥이 없었다 일어났기 때문에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퍼져 나가면서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신다는 소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장 교수는 “아이들이 나중에 다른 대학을 가더라도, 첫 시작은 꼭 애즈베리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다. 경건과 부흥의 전통, 신앙적 분위기 때문이었다”며 “아이들이 예배에 참여하면 옆에서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어떤 때는 그 기도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내 깊은 속마음을 정확히 아신다는 느낌을 받고 놀랐다고 표현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이 평안했다는 간증도 한다. 친구들도 사모하고 있고, 다녀왔는데 또 가자고 권면하면서 서로 참여를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다”고도 했다.설명하다 다소 울컥하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며 “한국에서는 성령운동을 하다 부정적으로 흐르는 면들이 일부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계속 관망하면서 긴가민가 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장기영 교수가 최근 출간한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 데니스 킨로의 365일 묵상집>.장기영 교수는 지난해 말 데니스 킨로 총장의 묵상글을 모은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 데니스 킨로의 365일 묵상집(This Day with the Master: 365 Daily Meditations)>을 출간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킨로 총장님이 세운 프란시스 애즈베리 협회를 방문했다 선물로 받았는데, 가족들과 읽기가 좋아 몇 년간 이 묵상집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다 최근 출간했다”며 “킨로 총장님이 학생들에게 계속 설교하셨던 내용들로 계속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애즈베리 대학교가 지금처럼 부흥하면 좋겠다고 기도해 왔다. 그래서 이 부흥이 남 일로 느껴지지 않고, 많은 이들의 기도 응답으로 주신 소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왼쪽부터) 장기영 교수가 애즈베리 협회에 방문했을 때 협회 총재와 촬영한 사진. ⓒ장기영 교수
2023년 02월 27일
ChatGPT에 소아성애와 동성애 다른 점 물었더니…동성결혼 합법화 진영 주장하며청소년 성적 자기결정권도 주장사실상 소아성애 합법화로 귀결반응 두려워 목소리 내지 않을 뿐특정 이념 빠지면 사고 마비되나악어 없는 쪽에서만 놀면 괜찮나▲독일에서 소아성애자 3만 명을 추적할 예정이라는 2020년 보도 화면. ⓒ연합뉴스TV 캡쳐동성애 옹호론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동성애가 소아성애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질문이다. 나아가 동성애가 수간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까지 하면, 그전까지 합리적으로 토론하는 모습을 보이던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갑자기 모드를 전환해 반대자에게 ‘동성애 혐오’라는 프레이밍 기술을 시전하기 시작한다.사회의 도덕규범을 기준으로 하면 동성애는 이미 우리 중 극히 일부, 특히 일부 젊은 세대에게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20년 간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는 물론 심지어 공교육 현장에서까지 동성애자가 사회적 약자라는 신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주입한 결과이다.반면 소아성애와 수간의 경우, 여전히 사회 절대다수가 매우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변태적 성행위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동성애가 소아성애나 수간과 별다를 바 없는 비도덕적 행위라고 인식하고 있음에도, 동성애 옹호론자들은 명확한 선을 긋고 싶어한다. 동성애와 소아성애는 다르고, 소아성애는 파렴치한 행위라고.필자는 최근 논란이 된 ChatGPT에게 소아성애와 동성애가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인공지능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동성애는 두 성인의 동의에 의한 성관계의 일종인 반면, 소아성애는 소아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성인의 일방적 의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성관계라는 점이다. 둘째, 현재 동성애 권리를 주장하는 정치 시민운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첫째, 쌍방 동의 여부가 기준이라면 발정기 동물은 성욕이 왕성하므로 수간 역시 발정기에 한해 한시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지를 물었다. (필자의 의견이 그렇다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오해가 없기 바란다.) 둘째, 합법성 여부가 기준이라면, 현재 세계 200여 개국 중 80개국 정도는 동성애를 형사 처벌하고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은 타당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첫 번째 후속 질문에 대한 ChatGPT의 답은 먼저 했던 질문의 답을 중언부언하는 수준이었다. 동물과의 성관계는 비윤리적으로 인식될 뿐 아니라 불법이란다.필자는 궁금했다. 필자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이들이 동성애 행위 역시 비윤리적이라 생각하는데, 인공지능은 왜 동성애만큼은 비윤리적이지 않다고 ‘우기는’ 것일까? 이중잣대 아닌가? 둘째 연계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중언부언이었다. 이쯤 되니, 대체 어떻게 이세돌을 이긴 것인지 궁금해졌다.다른 유사한 질문을 하니 자신들의 내용 정책(content policy)을 위반했다며, 답을 시작하자마자 경고 메시지와 함께 연결이 끊겨버렸다. 동성애 옹호론자들이 혐오 프레이밍으로 토론을 파행시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사실 필자 역시 성행위와 관련한 공적 토론은 매우 불편하다. 정상적 성행위에 관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동성애는 더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동성애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바로 이 불편함 때문이었다.하지만 지금처럼 공교육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드는 것만큼은 좌시할 수 없었다. 나를 이런 불편한 토론 자리로 억지로 이끈 것은 동성애 옹호론자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2010년 소아성애 사태로 폐교당한 독일 진보교육의 상징 오덴발트 학교. ⓒ위키피디아조금이라도 사고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성애가 허용될 시 소아성애 역시 합법화될 것이라는 것쯤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동성애는 법적으로 인정하면서 소아성애를 금지하는 것이 차별 아니냐고 소아성애자들이 주장한다면, 반박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소아성애가 비윤리적이라고? 지난 수천 년간 동성애가 비윤리적이라는 도덕관념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일부를 선동해 법까지 바꿨는데, 소아성애에 대한 윤리적 판단 역시 바뀌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그런데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정치 진영의 주장들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이미 소아성애 합법화 역시 주장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지 사람들의 반응을 두려워하여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한 번 생각해 보자. 이들은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함께 주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하여 진화하면, 소아성애가 허용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 아니겠는가?그럼에도 소아성애를 범죄시하는 사람들조차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필자는 이해하기 매우 힘들다. 특정 이념에 빠지면 사고능력이 마비되는 것인가 하는 의심도 든다. 악어가 사는 연못에 들어가면서, 악어가 없는 쪽에서만 놀면 괜찮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성적 자기결정권은 성행위 여부 및 상대에 관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현행법에서는 만 16세 이하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사 동의를 얻었다 해도 만 16세 이하의 아동과 성관계를 맺은 사람은 미성년자 의제강간이라는 죄목으로 형사처벌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교육과정 개정 시안에서는 중학교 3학년(만 15세) 때부터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가르친다. 아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교육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믿는 연령의 기준이 점점 더 낮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동성애가 정상이며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르쳐야 한다고 믿는 진영 사람들의 생각은 프로이트의 성이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프로이트는 3세부터 시작되는 남근기(Phallic Phase) 아이들은 자신의 엄마 혹은 아빠를 향하여 성적 욕구를 가진다는 패륜적인 주장을 했다. 3세 아이 역시 성욕이 있다면, 이 아이들이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성인과의 성관계를 법적으로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체 어떤 논리로 반대할 것인가?필자 혼자만의 쓸데없는 상상이기 바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두렵다. 실제로 독일 진보정당 선두 주자인 녹색당 주류는 1980년대부터 소아성애 합법화 논의를 전개한 바 있으며, 거센 항의를 받아 2014년 당 대회에서 이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과연 이들이 여기서 멈출 것이라 믿는 것인가?댐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작은 균열이 보일 때 막지 않으면 수많은 인명이 수몰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다. 유럽은 이미 무너진 댐이 됐으며, 미국도 작은 균열을 막지 못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차례다. 우리가 어떤 운명에 처해질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달려 있다.이형우교수·행정학 박사Professor/Ph.D. in Public Management한남대학교 행정학과Department of Public Administration, Hannam University
2023년 02월 27일
2월 26일 1주기 맞은 이어령 선생시대 관통한 지혜, 백성 바람막이그의 회심, 세속 지성계에 경고등시학(詩學)으로 신학 영역 넓혔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라고 말하는 이어령 선생. ⓒ크투 DB2월 26일은 故 이어령 선생의 1주기 기념일이다. 때마침 추모 에세이와 전집이 잇따라 출간되어 몹시 기쁘다.출판사 21세기북스는 <신명의 꽃으로 돌아오소서>라는 추모 에세이집과 이어령 전집 24권을 발간했다. 추모집에는 강은교 시인, 김남조 시인, 권영민 문학평론가, 고건 전 서울시장 등의 글이 실렸다. 김승희 시인은 이어령에 대해 한국인으로는 드문 “르네상스적 인간” 이라 했다. 소설가 한수산은 “그는 하나의 계절이었다. 봄이었고 새롭게 찾아오는 계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에세이집 제목은 아마 사물놀이에서 따온 듯하다.선생은 알다시피 초기작 <우상의 파괴>를 시작으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장군의 수염>, <축소 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등 기라성 같은 문학작품을 통해 한국의 지성을 세계에 알렸다.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의 입구를 장식할 정도다.이어령 선생의 지성의 발걸음은 비단 문학 세계에만 머문 것이 아니었다. 언론, 역사, 문화와 사상 비평, 철학, 창의적 정책개발, 사회참여 등으로 전방위에 걸쳤다. 생전 그는 160권의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다.무엇보다 그의 글은 굴곡의 현대사를 지나면서, 백성과 함께 숨 쉬고 아파하고 칼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백성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의 통찰과 지혜는 시대를 관통했고 때론 시대를 초월했으며 결국 하늘에 감동적인 교훈을 새겼다.많은 한국인이 그의 글을 보면서 시대 변화를 읽었고 문명의 가치를 발견했으며, 인간에게 주어진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위대함을 깨달았고 존재의 뜻과 의미를 깊은 사색의 세계로 끌어올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인이 낳은 최고의 지성임에 틀림없다.그러나 나는 그가 이룩한 최고의 공헌은 ‘기독교로의 회심’ 그 자체라고 본다. 혹자는 아직도 그의 회심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불신의 혹평을 서슴치 않는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그의 회심을 단두대에 올려놓는 저들의 무모한 용기에 그저 비탄한 심정이다.이어령의 회심은 우선 세속적인 지성의 세계에 충분한 경고가 되었다. 그의 회심작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숱한 조롱과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지성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낸 영성의 전리품으로 손색이 없다. 그의 신앙 순례는 신학(神學)의 문 앞에 머리를 숙이며 스스로 ‘시학(詩學)’이라 명명함으로서 오히려 신학의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필자는 2007년 그의 회심 때 “한국의 인문학이 교회 안으로 통째로 걸어 들어왔다‘고 촌평한 바 있다. 그만큼 그의 회심은 한국교회에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이어령 선생은 긴 암 투병 끝에 마침내 ‘눈물 한 방울’을 그려내며 이생을 마감했다. 그의 ‘눈물 한 방울’은 생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새로운 생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었으며,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낸 최고의 기쁨이었다.그는 그렇게 한국교회에 이색적이면서 신비로운 빛을 심어주고 떠났다. 그의 가르침이 여전히 살아있다. 그럼에도 그 가르침대로 한국교회가 살아내지 못하는 점이 부담스럽다. 그도 그 나름대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한 것이었다. 그의 회심을 재료 삼아, 한국교회에 지성의 열매가 맺어지길 소원한다.▲최더함 박사. ⓒ크투 DB최더함 박사바로善개혁교회 목사마스터스 세미너리 책임교수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967
2023년 02월 27일
▲히즈쇼에서 준비한 사순절 자료. ⓒ히즈쇼올해 사순절 기간에도 대부분 교회들이 온·오프라인 예배를 병행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사순절을 시작으로 고난주간, 부활주일까지 교회와 가정에서 진행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 자료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이에 히즈쇼(His Show)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주일학교들을 위해, 다채로운 온·오프라인 콘텐츠를 준비했다.히즈쇼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사순절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말씀 묵상 달력을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즈쇼 이미지로 제작된 3단 달력을 각 가정에서 A4 용지에 출력하기만 하면 된다. 가정에서 부모님과 말씀을 읽고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는 효과적인 콘텐츠다.사순절 마지막 한 달 동안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부활을 가르칠 수 있는 6가지 커리큘럼도 온·오프라인 모두 최적화해 준비했다. 풍부한 PPT 자료, 말씀 암송 챈트, 설교 전 3D 애니메이션과 찬양 등을 활용하여 예배를 준비할 경우 학습 효과를 더 향상시킬 수 있다.특히 온라인 예배를 준비하지 못한 교회들을 위해, 히즈쇼TV에서는 예배 영상이 제공된다. 가정용 패키지를 구매하면 각 가정에서 예배부터 공과까지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다.고난주간에는 각 가정에서 배표해 사용 가능한 고난주간 묵상집을 마련했다. 5단 병풍으로 펼쳐 하루 하나씩 총 8일 동안 묵상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히즈쇼 이미지와 짧은 본문 가이드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췄다. 가정에서 나눌 수 있는 질문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묵상한 내용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다.사순절의 정점인 부활절에는 각 가정으로 편지와 함께 배달되는 선물 패키지를 준비했다. 성경 인물 피규어, AR로 살아나는 성경 동화와 퍼즐, 고난주간 묵상집을 함께 구성했다. 특히 올해는 ‘플레이북 2종’이 출시돼, 더 풍성한 선물 패키지를 보낼 수 있다.이상 모든 내용을 정리한 사순절 세미나는 오는 28일(월) 오후 9시부터 1시간 동안 히즈쇼 유튜브를 통해 진행된다. 댓글을 통해 즉석에서 질문도 할 수 있다.문의: 1644-4129, https://hisshow.co.kr, https://www.youtube.com/c/His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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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부활절(復活節)(Easter)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최대의 축일이다. 초창기에는 유월절을 따라 유대력 니산월(태양력 3-4월) 14일을 부활절로 기념하였다. 그러나 유대인의 유월절을 그리스도인의 부활절로 지킬 수 없다는 로마 교회의 판단에 따라 니케아공회(325년)부터는 춘분(3월21일) 이후 최초의 만월(彎月)이 지난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결코 부활절이 유월절보다 먼저 오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활절의 날자는 매년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대체로 3월22일과 4월26일 사이에 떨어지게 된다.● 2017년= 4월 16일● 2018년= 4월 1일● 2019년= 4월 21일● 2020년= 4월 12일부활절 풍습으로는 ①흰옷(기쁨) ②백합(순결) ③양고기(예수님) ④달걀(새 생명) 등이 있다. B. 고난주간(苦難週間)(Passion Week)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종료주일 다음날(월)부터 부활하시기 전날(토)까지 일주일을 말한다. 수난주간이라고도 하는 이 일 주일은 예수님의 행적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지내는 주간으로 특히 최후의 만찬이 열렸던 목요일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계셨던 금요일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심정으로 금식하는 성도들이 많다. C. 사순절(四旬節)(Lent)부활절 전까지 6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40일의 시작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부른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에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 금식, 기도, 묵상 등의 경건생활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경우 고기를 제외한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리는 것이 원칙이다.● 성경에서 40일은 고난과 인내의 기간을 상징한다. 노아의 홍수 때 밤낮으로 비가 40일간 내렸고(창 7:4),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으며(민 14:33), 예수님께서는 40일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마 4:1). D. 사육제(謝肉祭)(Carnival)카니발의 어원은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이다. 즉 원래 사육제는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실컷 고기를 먹어두는 3-7일 정도의 행사 기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본질은 사라지고 자유와 방종이 과도하게 허용되는 축제로 변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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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jin2nul2.tistory.com/4480주일학교 사순절 특별 프로그램 모음●사순절 첫째 주 : 예수님은 누구신가요?목 표: 예수님의 생애를 그려봄으로써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한다.준비물: 예수님 생애 그림 여섯장진 행: 준비된 그림을 반별로 나누어준다 / 각반에서는 색칠을 하게 한다 / 완성된그림은 각 개인이 가질 수 있고 친구에게 서로 나누어 주도록 할 수 있다.●사순절 둘째 주 :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목 표: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로 이 땅에 오셨으며,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한다.준비물: 예수님 그림 1장(전지크기), 하트 모양의 종이(아이들수만큼), 크레파스, 풀진 행: 예수님의 팔을 벌리고 있는 그림을 전지크기로 준비하여 게시판에 붙여 놓는다/각 반별로 하트 모양의 종이를 나누어 주어서 아이들 얼굴을 그리게 한다/다 그린그림을 예수님 몸에 붙이면서 "나는(너는) 예수님의 친구야"라고 말하게 한다.완성된 그림 앞에서 반별로 사진을 찍는다.●사순절 셋째 주 : 나는 예수님의 자녀(배너 카드)목 표: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아이들도 예수님이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고백할수 있게 한다.준비물: 마태복음 16:16말씀글자판, 배너카드 6장, 찍찍이진 행: 마태복음 16:16 말씀글자판을 만들고,그위에 찍찍이를붙여 놓는다/글자판 위에 덮을 배너카드 6장을준비하여 찍찍이를 이용하여 글자판을 가린다/배너카드를 하나씩 떼어가며 암송케 한다/암송이 끝난후에 교사기도로 마무리한다.●사순절 넷째 주 : 사랑의 식탁공동체목 표: 최후의 만찬을 생각하며 빵과 포도쥬스를 함께 나누어 먹는 식탁공동체 체험을 한다.준비물: 덩어리빵, 포도쥬스, 큰 접시, 큰 그릇진 행: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쥬스를 나누어 주신 것은생명을 주신, 사랑의 식사였음을 이야기해 준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하는마음으로 반별로 실시한다. 접시 위의 덩어리빵을 돌아가며 나누어 먹고, 포도쥬스도큰 그릇에 담아 돌아가며 마신다. 느낌을 나눈 후에 다함께 손을 잡고 선생님의기도로 마친다.●사순절 다섯째 주 : 예수님처럼 할래요목 표: 예수님이 섬김을 보이셨던 것처럼 어린이들도 다른 친구를 사랑하며 위하는마음을 갖게 한다.준비물: 반별 대야, 수건, 물통, 어린이들용 의자진 행: 예수님 분장을 한 선생님이 제자분장을 한 선생님의 발을 씻어 준 후 말한다."예수님이 발을 씻어 주신 것은 사랑하며 섬기기 때문이예요. 우리 친구들도 예수님처럼서로서로사랑하며 섬기는 어린이들이 되세요" 각 반별로선생님들이 어린이들의 발을 차례로씻어주고, 꼬옥 안아주며, "사랑한다, 야 !"라고 귀에 속삭여 준다/진행하는 동안 반주찬양을 틀어주어 경건한 분위기를 만든다/각 반별로 둥글게 손을 잡고 인도자의 전체 기도로마친다.
2023년 02월 27일
첨부파일 참고하세요.나도예수님따라걸어요_사순절활동.hwp사순절 기간동안 매 주일 할 수 있는 활동프로그램입니다.센타학습으로 되어 있는데..한 주에 다 하는 것이 아니고 매 주 한 센타씩 돌아가면서 하게 되고..마지막 주에 모든 센타를 마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교회에 맞게 수정해서 사용하세요.그리고 5센타에 인형들의 고백부분을 따라 떼어내어서 수정하면..종려주일 설교로 사용할 수 있어요.약간 쉬운 말로 고쳐서 유치부 설교로 사용했던 적이 있어요.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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