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8:31-50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뇨?
시 18:31-50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뇨?
황성구목사
(시 18:31-50)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38]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4]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45]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내가 –38회, 주께서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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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은 다윗이 사울과 대적들의 손에서 벗어난 후에 하나님 앞에 뜨거운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다윗같은 뜨거운 감사의 고백이 넘쳐나기를 축복하며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윗은 평생 전장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골리앗과의 전투로부터 시작해서 그는 블레셋과 싸웠고, 사울에게 쫓김을 당했으며,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의 세력과 싸워야 했고, 왕이 된 후에도 주변의 수많은 나라들과 싸워 승리했지만,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윗이 자신의 인생을 회상할 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자기를 보호해주셨고, 구원해주셨으며,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생애 마지막에 감사할만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없었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제 젊은 세월을 사울에게 쫓겨다니게 하셨으며, 왜 하나님께서는 7년 반의 내전을 통해서 저를 왕위에 오르게 하셔야 했으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식들 간의 강간과 살인을 허용하셨으며 왜 압살롬의 반란을 허락하셨습니까?”
불평하려면 참 불평거리가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가운데서도 어떤 사람은 감사의 찬송으로, 어떤 사람은 후회와 불평으로 그의 인생을 마무리 합니다.
오늘 우리도 삶속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전쟁속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면 오늘 우리도 전쟁터와 같은 세상이지만 감사와 찬양으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너무 더워서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욕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날이라면 더 뚜렷한 차이가 나겠죠?
시편 18편은 사무엘하 22장과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에 나타나는 독특한 차이가 있다면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라는 말씀이 전부였는데,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바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는 표현입니다. “(1절)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최용덕)
주는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요새시라 주는 나를 건지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는 나의 여호와 나의 구세주“
본문의 ‘사랑하나이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함(racham)’은 보통 모성애를 표시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명사로는 ‘어머니가 아기를 품고 있는 태, 자궁’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수많은 단어중에서도 특히 ‘탯줄로 연결된 사랑같이 밀착된 사랑인 ‘라함’을 사용해서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결되어있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사무엘하 22장에는 없는 이 표현을 시편 18편에 기록함으로써 성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고 역사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사탄도 여전히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예배하려고 하면 할수록, 기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탄의 역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수많은 전쟁가운데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가 고백할 수 있는 말이 바로 “(1절)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공중그네타기 서커스 공연을 보셨습니까? 곡예사들이 줄을 잡고 이쪽에서 저쪽까지 공중제비를 돌며 반대편까지 날아갑니다. 그러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아슬아슬하게 그 사람의 손을 잡아 줍니다. 볼때마다 손에 땀이 나는 아슬아슬한 스릴을 느낍니다. 모두가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게 됩니다. 사람들은 공중제비를 도는 배우에 주목합니다. 하지만 곡예사의 말에 의하면 이 공연의 승패는 잡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손만 내밀고 있으면 잡는 사람이 공연의 모든 승패여부를 결정합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회전하고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라 잡아주는 사람입니다. 잡아주는 사람이 더 노련한 곡예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붙잡아 주시는 분,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붙잡고 가신 그분, 다윗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빽이 되신 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2절부터 30절까지의 모든 것을 요약하는 한 마디입니다. 성경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말씀속에서 하나님은 어떤분인지를 30절까지에서 보여주고 있다면 31절부터는 다윗 자신의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질문, 누가 하나님이냐, 하나님외에 누가 반석이냐는 질문은 모두의 입에서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답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뿐입니다! 라는 답으로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인 것입니다.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하나님이 힘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갑옷을 입히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장시키시는 말씀입니다. 32~3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다윗이 무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계십니다. 허리띠를 띠우시는 분, 길을 완전하게 하시는 분, 발을 암사슴발같게 하시는 분, 높은곳에 세우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사 45:5, 개정)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상황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시기 위해서 나를 부르시고 띠를 띠우시고 강하게 하시고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소년다윗이 장풍으로, 번개로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지 않으시고,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말씀을 근거로 다윗이 힘을 얻게 하셨습니다.
사울왕의 갑옷이나 창검을 들고 가게 하지 않으시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들이 벌벌떨고 있을 때 다윗은 말씀에 근거하여 나가게 하셨습니다.
(삼상 17:45, 개정)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33] 나의 발을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하나님은 다윗이 낙심하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게 하십니다. 다윗은 먼저 자신의 발을 보라고 합니다. ‘암사슴발’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날렵하고 가볍게 달릴수 있는 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두 번째로 다윗은 ‘손’을 이야기합니다. 놋활은 놋으로 장식된 활이나 놋활촉을 사용한 활을 의미하기보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놋활’처럼 고대인들은 인간이 감히 당길수 없는 활, 오직 신만이 당길수 있는 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는 혼자서 당길 수 없고, 여러 사람이 발로 쏠 수 있는 대형 활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용사들은 다루기 힘든 놋활을 당길 수 있는 힘, 즉,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을 다윗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신 당겨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34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즉 ‘가르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는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것,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가르침을 통해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하시고, 어느 순간 나에게 내공이 쌓여서 놋활을 당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주목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승리의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온유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온유는 자녀가 느끼는 부모의 사랑과 비슷합니다. 자신을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의 온유하심,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온유의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런데, 32-35절 말씀을 읽다가 에베소서 6장의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전신갑주를 입혀주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악한영적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제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승리하게 하셨는지를 간증합니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가리니 그들이 망하기 전에는 돌아서지 아니하리이다 [38] 내가 그들을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리이다 [39] 주께서 나를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들이 내게 굴복하게 하셨나이다 [40] 또 주께서 내 원수들에게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끊어 버리게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걸음을 넓게 하셨다. 넓게 하셨다는 것은 ‘내 아래에 있는 나의 발판들을 넓게 하셨다’는 뜻이다. 징검다리를 딛고 개울을 건널 때, 그 디딤돌이 작으면 발이 미끄러질 위험이 있겠지만 디딤돌이 크고 넓으면 발이 미끄러지지 않고 잘 건널수 있음과 같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디딤돌을 넓게 하셔서 그로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빨리 전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크고 넓은 디딤돌을 주셔서 걷기에 안전하고 실족지 않게 하실 것이다.
원수는 참으로 강하지만, 우리의 대장 예수는 전쟁에 능한 큰 용사이시다.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마다 승리할 것이다. 다윗의 전쟁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함이었다. 그래서 39절에서도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라고 말씀합니다.
‘40절 –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라는 것은 영어성경(KJV, NLT) ‘내 원수들의 목을 내게 주사’라고 번역했다.
다윗이 원수를 멸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셔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1] 그들이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그들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2] 내가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
적들도 성도들과 동일하게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고대 전쟁에서는 전쟁에 임할 때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진군할때도 있지만 상대방의 신에게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적들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하나님의 힘, 도우심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다윗은 그들은 바람앞의 티끌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쏟아버렸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원수들을 완전히 패배케 하셨습니다.
[43] 주께서 나를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4] 그들이 내 소문을 들은 즉시로 내게 청종함이여 이방인들이 내게 복종하리로다 [45] 이방 자손들이 쇠잔하여 그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
다윗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주께서 나를 다툼에서 건지시고 여러 민족의 으뜸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사울에게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여러번 죽이려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여론은 항상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대적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은 그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작성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다윗의 소문을 듣고 그에게 순복하며 복종할 것입니다. 항복할 것 같지 않았던 이방나라들이 즉시, 또 완전히 복종할 것입니다. 그들은 무력해져서 두려워 떨며 다윗에게 항복할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와 우리 자녀들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와 우리자녀들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왜 방황해하며 두려워하며 무서워하고 떨고 있습니까?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인생의 전쟁을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으로 여러분의 삶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무기로 쥐어주셨습니까?
다윗은 그 비결, 승리의 비결을 46절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6]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다윗은 자신의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런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고백을 하고 계십니까? 그분을 진짜 의지하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손을 놓으십시오.
겸손은 ‘저는 부족합니다. 못합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저를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라는 것이 겸손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저의 주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 하나님이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다윗이 고백하는 삶의 주인공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인생의 주인, 주체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감사함으로 소리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권자 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47]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48]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나를 대적하는 자들의 위에 나를 높이 드시고 나를 포악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임을 기억했습니다. 자신이 싸우려하지 않고, 말씀에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것입니다. 그랬더니 자신을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민족들이 복족하게 해주셨다는 삶의 고백을 계속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멈추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물어본다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라고 말한다면? (찬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 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 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49] 여호와여 이러므로 내가 이방 나라들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이다 [50]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이 시의 절정은 49절~50절입니다. 그 이유는 로마서 15장을 한번 펴보시기 바랍니다. 9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신 것을 이야기하면서 구약의 네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시편, 신명기, 시편, 이사야)그 첫 번째 구절이 바로 시 18편 49절 말씀입니다.
(롬 15: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열방들은 다윗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에서 바울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통치안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50절의 왕은 다윗이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그 후손이 누구입니까? 바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신 그리스도 예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다윗언약, 네 자손가운데서 왕을 주시겠다. 그것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다윗과 그 후손, 자기가 보지 않았고, 경험하지 않은 일이지만 먼 훗날, 자신과 맺으신 연약을 완성할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이 시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긴 시편의 모든 고백은 결국 한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1절입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그 모든 내용은 감사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중심은 항상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한가지만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렘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시 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시 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말끝마다 ‘엄마’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내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은 말의 중심이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오늘 본문에는 “내가, 내게”라는 단어가 참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가 라는 단어의 중심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심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자기를 이기게 하신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38회, 주-10회)
그래서 그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찬양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46절의 말씀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라는 단어는 상투적인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UN 반기문 총장 2013년 송년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건물(建物)은 높아졌지만 인격(人格)은 더 작아졌고, 고속도로(高速道路)는 넓어졌지만 시야(視野)는 더 좁아졌다.
소비(消費)는 많아졌지만 기쁨은 더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家族)은 더 적어졌다.
학력(學力)은 높아졌지만 상식(相識)은 더 부족(不足)하고, 지식(知識)은 많아졌지만 판단력(判斷力)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專門家)들은 늘어났지만 문제(問題)는 더 많아졌고,약(藥)은 많아졌지만 건강(健康)은 더 나빠졌다.
돈을 버는 법(法)은 배웠지만 나누는 법(法)은 잊어 버렸고, 평균수명(平均壽命)은 늘어났지만 시간(時間) 속에 삶의 의미(意味)를 넣는 법(法)은 상실(喪失)했다. 달에 갔다 왔지만 길을 건너가 이웃을 만나기는 더 힘들어졌고,우주(宇宙)를 향해 나아가지만 우리 안의 세계(世界)는 잃어버렸다.
자유(自由)는 더 늘었지만 열정(熱情)은 더 줄어들었고,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마음의 평화(平和)는 더 줄어들었다.“
과연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일까요?
미국의 부흥 사였던 무디(D L. Moody)는 말하기를 ①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②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③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④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늘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기도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영원토록 큰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다윗이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나의 힘이시며 나의 반석이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에게 띠를 띠우시고 우리의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 우리의 발을 암사슴의 발같게 하시며 우리를 높은 곳에 세워주시고, 놋활을 당길 수 있도록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옵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 날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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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One Point 설교 작성법 | 관리자 | 734 | 2014.07.27 01:26 | |
51 | 동력장치가 없는 배를 타고 (출애굽기 13:17-22) 분당우리교회 이찬 | 작은씨앗 | 135 | 2023.06.09 15:08 |
50 | 복음을 가진 사람들 로마서 1장 16-17절 (롬 1:16-17) 교사연 | 작은씨앗 | 153 | 2023.06.03 18:07 |
49 | 막 2:1-12/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 관리자 | 478 | 2019.10.01 00:13 |
48 | 시 31:1-24/ 한결같은 사랑 | 관리자 | 308 | 2019.10.01 00:12 |
47 | 시 34:1-22/ 예수믿는 재미가 있어요 | 관리자 | 435 | 2019.10.01 00:11 |
46 | 히 1:1-4/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하세요 | 관리자 | 231 | 2019.10.01 00:11 |
45 | 시편 39편 1~13절 / 제목: 무엇을 바라고 계시나요? | 관리자 | 870 | 2019.10.01 00:09 |
44 | 요 6:1-13/ 오늘도 시작하는 사람 | 관리자 | 347 | 2019.10.01 00:09 |
43 | 행 9:32-43 / 예수님을 닮았더니 | 관리자 | 252 | 2019.10.01 00:08 |
42 | 눅 18:15-27/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 | 관리자 | 579 | 2019.10.01 00:07 |
41 | 느헤미야 1:1-5 / “무너진 성벽이 있습니다” | 관리자 | 247 | 2019.10.01 00:06 |
40 | 시 100:1-5 /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요? | 관리자 | 208 | 2019.10.01 00:04 |
39 | 요일 4:7-11절 / 사랑이 여기 있어요! / 비법, 포장된 선물 / | 관리자 | 371 | 2018.11.28 01:24 |
>> | 시 18:31-50 /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뇨? | 관리자 | 475 | 2018.11.28 01:24 |
37 | 행 13:1-3 / 누가 그리스도인일까? | 관리자 | 332 | 2018.11.28 01:23 |
36 | 딤전 4:6-13 / 제목: 어리다고 놀리지 마세요. | 관리자 | 386 | 2018.11.28 01:23 |
35 | 사 47:1-15 / 나뿐 소리, 예뿐소리/ 누구로 살아야 할까요? | 관리자 | 292 | 2018.11.28 01:22 |
34 | 일이 꼬여만 갈 때 아멘! 합시다./고후 1:12-22절 | 관리자 | 452 | 2018.11.28 01:21 |
33 | 시편 25:1-22절, '주를 바라보았더니' | 관리자 | 398 | 2018.11.28 01:19 |
32 |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슥 4:1-7) | jmr0112 | 291 | 2016.11.28 23: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