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

관리자 | 2013.04.23 12:02 | 조회 361 | 공감 0 | 비공감 0

싸이의 '포르노 한류', 자랑스럽습니까?

[정희준의 '어퍼컷'] 한류 전도사를 가장한 미국의 첨병

 [프레시안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10년 전이다. 한 교수가 일본 잡지를 보여준다. 표지 모델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던 여배우였다. 그런데 그 표지를 본 사람들의 입에선 낮은 탄식이 새나왔다. 입에 꽤 두껍고 기다란 김밥을 한입 가득 물고 사진을 찍은 것이다. 썬 김밥이 아니라 썰기 전의 김밥을 손에 쥐고서 살짝 웃는 얼굴로 말이다.

그 여배우든 그의 매니저든 그 장면의 의미(?)를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해외 진출은 꽤 중요했나 보다. "꼭 저렇게 해서라도 일본에 가야 하나" 싶었지만 이는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성적 측면에든 어느 측면이든 개방된 사회를 탓할 필요도 없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탓할 필요는 더욱 없다.

국위 선양 포르노그래피

싸이의 '젠틀맨'을 봤다. 발매한 지 사흘이 지나서였다. '유튜브'에 동영상이 뜨자마자 언론이 "1000만 뷰" "3000만 뷰" "5000만 뷰"를 카운트 해대기 시작하고 저녁 뉴스에까지 등장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평소 이른바 B급 문화를 응원하는 사람이고 우리 사회에 성적 억압도 없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젠틀맨' 뮤직 비디오는 보기에 조금 불편했다. 확실히 '불친절'한 뮤직 비디오였다.

선탠을 하는 여성의 비키니 끈을 풀어버리고, 여성이 커피를 마시는데 잔을 툭 치고, 여성이 앉는 것을 도와주는 척 하다가 의자를 빼버리고, 그래서 쓰러진 여성을 이번엔 다른 남성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는 듯하다 내동댕이쳐버리고….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 비디오에서 싸이 등 남성들이 여성을 대하는 모습이 여성에 대한 "학대(abuse)에 가깝다"는 의견이 많고 그래서 대단히 "여성 혐오적(misogynic)"이라고 평한다. 또 아이들 장난 같기도 한데 이게 약을 올리는 방식이라서 보다 보면 짜증이 난다는 반응도 꽤 된다.

이보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은 선정성이다. 그런데 이 선정성의 수준이 '섹시'나 '에로틱'의 수준을 넘어서 포르노그래피의 수준이다. '젠틀맨'은 성적 코드를 내재적으로 기호화하거나 하는 등의 복잡한(?) 방식을 거부한다. 여성(마네킹)의 가슴을 만지고, 선탠을 하는 여성의 배를 쓰다듬는다. 수영장에서 누워 있는 남성들의 얼굴 위에서 비키니를 입은 반라의 여성들이 엉덩이를 흔들어대다가 남자들이 발을 올리자 그 발을 잡고 계속 엉덩이를 흔든다.

압권은 오뎅을 먹는 가인의 모습이다. 맥주 캔을 흔들어대며 하얀 거품을 사방에 뿜는 싸이도 꽤나 성(행위)적이지만 우동을 정신없이 먹어대는 싸이를 바라보며 마요네즈인지 뭔지 하얀 소스를 듬뿍 바른 오뎅 바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은 '젠틀맨' 뮤직 비디오가 다른 어느 것보다 포르노그래피에 의존하여 탄생한 작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 싸이의 신곡 '젠틀맨'. ⓒYG엔터테인먼트

외국인이 좋아하면 포르노도 괜찮아?

이러한 선정성을 놓고서 어떤 이들은 "외국에서 이 정도는 문제가 없다"면서 "우리 사회도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고 주장한다.

그 발상이 재밌다. 우선 싸이는 이 뮤직 비디오를 외국인만을 위해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가수를 평하는데 그 기준은 외국사람? '젠틀맨'은 내수용이 아니라 수출용이었나보다.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을 우리의 눈이 아닌 외국의 눈을 빌려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외국에서 괜찮다고 하는데 이 정도의 뮤직 비디오는 미국에서도 매우 심하게 선정적이고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선정적 장면이 들어간 뮤직 비디오는 심야 시간대에만 볼 수 있는데 이 정도로 '저'한 질의 뮤직 비디오는 적어도 나는 심야 시간대에도 본 적이 없다. '젠틀맨' 뮤직 비디오는 싸이가 유튜브를 통한 확산을 1차적 목표로 삼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MTV를 목표로 했다면 이렇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외국에서도 "싸구려 저질(cheap and low)" "역겹다(disgusting)"라는 평이 많다.

특히 가사의 "mother father gentleman"을 "언어의 유희다", "패러디다" 하며 분석을 내놓는다. 이 후렴구는 영어 욕설을 비튼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비틀었다는 원래의 욕설은 패러디는커녕 비틀고 유희로 삼기에도 민망한 욕설이다. 미국의 욕설 중에서도 가장 세기 때문에 일반인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잘 쓰지 않는다. 그런 욕설을 우리는 아주 즐겁게 또 흐뭇하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문화적 개방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에 뮤직 비디오의 선정성만으로는 글 쓸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재미있게 느낀 것은 언론과 여론의 관대함이다. 지금 온라인상에서는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라는 의견들이 대단히 많다. 그래서 '19금'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우세하다.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봐도 모두 "심하다"고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 언론을 제외하고는 '젠틀맨'의 선정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문제 삼더라도 찬반양론을 소개하는 정도다. 여론은 선정성보다는 국위 선양을 강조하며 젠틀맨의 빌보드차트 1위 등극을 바라는 분위기다. 외국 언론이 '젠틀맨'을 다뤄주니 감사하고, '젠틀맨'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면서 '자뻑'하는 분위기다.

한 언론은 영국의 일간지 <더선>의 기자가 '시건방춤'을 소개하자 누리꾼이 "황색 언론이긴 해도 영향력이 대단한 곳에 실렸네", "싸이, 역시 '국제 가수'의 위엄", "기자가 직접 추다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싸이의 노래 '젠틀맨'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 뮤직 비디오의 클릭 수와 여기에 관심을 갖는 외국 언론의 기사에 열광하는 우리다. 선정성에 대해 한 누리꾼은 그런다. "뭐 어쩌겠어요. 싸이잖아요."

유튜브 클릭 수, 빌보드차트 순위가 대한민국의 수준을 결정하나?

싸이는 새 음악을 (사실은 뮤직 비디오를) 준비하면서 '강남 스타일'의 엄청난 인기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그래서 도전이나 변화를 택하기 보다는 안전을 택했다. 음악으로서의 '젠틀맨'은 '강남 스타일'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뮤직 비디오의 분위기도 그대로다. 문제는 춤이었는데 아마도 스스로 고민한 춤으로는 승부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빌려 왔다. 자신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다는데 '편곡'이 '작곡'일 수 없듯이 시건방춤을 가지고 '재창조'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

그래도 어쨌든 그는 최고의 엔터테이너다. 세계가 인정한 엔터테이너다. 그리고 초특급 한류스타다. 그 어느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나 기업이 했던 것보다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의 포장마차까지 세계에 홍보했다고 하고 싸이가 바로 한류의 전도사라고 한다. 싸이가 '창조 경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지만 동시에 싸이의 뮤직 비디오는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고 강자가 약자를 놀림의 대상, 장난의 대상으로 여기며 학대를 반복하는 노리개로 삼았다. 그래서 '저질 마초 문화'의 사례로 지목되는 것이다.

'젠틀맨' 뮤직 비디오는 싸이의 성적 판타지를 표현한 포르노그래피 작품이다. 포르노그래피의 목표란 인간의 성적 현실을 기호화하여 묘사하기보다는 보는 이를 성적으로 흥분시키기 위하여 에로틱한 심상을 야기함으로써 심리적 최음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 목적은 성공했나보다. 외국의 한 누리꾼은 "나는 이제 한국 포르노를 좋아한다(I just fancy some Korean porn now.)"라고 썼다.

싸이는 B급 문화의 자식이니 그렇게 내버려두라고들 한다. 그렇다. B급 문화는 저급 문화를 뜻한다. 그래서 싸이의 음악이나 뮤직 비디오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응원한다. 제2의 싸이, 제3의 싸이가 고구마 뿌리 캐듯 줄줄이 나왔으면 한다,

동시에 나는 그게 도대체 풍자인지 전복인지 저항인지 알 수가 없는 '싸이 포르노그래피'에 열광하는 국민, 유튜브 클릭수를 카운트하며 생중계 하는 언론, 빌보드차트 몇 등으로 국격이 판가름 나는 줄 아는 나라가 참 재미있다. 또 평소 같으면 분명 저급하다, 쓰레기 같다, 사회적 해악이다, 청소년들이 뭘 배우겠냐며 비난을 퍼부을 사람이 나올 만도 한데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특히 재미있다. 해외 진출, 국위 선양이면 뭐든 용서가 된다.

1990년대 말 서태지가 혜성과 같이 등장해 한국을 강타했을 때 세대 논쟁 등 다양한 담론이 형성됐다. 서태지에 대한 기성세대와 보수 집단의 공격이 대단했었다. 그런데 싸이가 한국이 아닌 세계를 강타하자 단일대오가 형성된다.

"아들과 함께 즐기세요. 미국 욕은 덤!"

많은 사람들이 이 뮤직 비디오를 불편해 한다. 외국도 그렇다. 한 누리꾼은 "나는 이 젠틀맨 노래가 싫다. 이 노래는 남자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것 외엔 없다. 우리 남자아이들이 보기엔 끔찍하지 않은가(I don't like this gentlemen song. It's all about men sexually abusing women. What an awful lesson to give our young boys.)"라며 자신의 불쾌함을 드러냈다. 나부터도 이 뮤직비디오를 중학교 다니는 아들이 보기를 원치 않는다.

싸이는 한류의 전도사라고 한다.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한단다. 그런데 싸이의 음악, 싸이의 춤이 과연 한국의 것인가. 사실 이거 몽땅 미국 것 아닌가. 미국 사람들이 싸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문화를 제법 잘 따라하고 자신들의 음악을 가지고 자신들을 즐겁게 해주는 한국인을 기특해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싸이는 미국의 욕설까지 한국인들에 가르쳐주지 않는가. 그것도 아주 즐겁게.

아리엘 도르프만 등이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도날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부제는 "디즈니 만화로 가장한 미 제국주의의 야만"이다. 미국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 캐릭터들이 전 세계 어린이들을 세뇌해 미국의 것을 찬양하기 만든다는 것이다. 말을 배우기 전부터 보는 디즈니 만화를 통해 세계 각국의 어린이들은 미국의 라이프스타일과 백인의 우월함을 주입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릴 적 미국의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제 미국의 문화를 몸소 실천할 뿐 아니라 포르노로 승부하고 이를 세계로 퍼뜨리고 나아가 이를 본토로 역수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싸이는 한류의 전도사인가 미국 문화의 첨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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