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학교 교사가 시작한 일 -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한 주일학교 교사가 시작한 일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신성남 = 킴벌(E. Kimbal)은 보스턴에 있는 한 작은 교회 '마운트버농 회중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1858년 어느 날 구두방에서 일하는 자기 반 학생을 직접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중에, 결국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그 가난한 학생의 이름이 바로 후일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어 미국을 감동시킨 무디(D. L. Moody)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결신자는 겨우 소년 한 명
이렇게 회심한 후에 전도자가 된 무디는 21년 후 런던을 방문하여 큰 전도 집회를 열었고, 거기에 참석했던 메이어(F. Meyer)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뒤 목사가 된 메이어는 미국에 가서 설교하였고, 그 모임에서 채프만(J, Chapman)이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YMCA에서 일했던 채프만은 야구 선수였던 썬데이(B. Sunday)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된 썬데이는 함(M. Ham)을 강사로 초빙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샬로트에서 3주간이나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신자는 겨우 16세의 소년 한 명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거의 실패한 집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년의 이름이 훗날 전세계 수천만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빌리 그레이엄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한 주일학교 교사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은 수년 전 필자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던 짧은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당시 어느 외국 책자를 무심코 뒤적이다가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렇게도 역사하시는구나" 하며 한동안 잔잔한 감동에 잠기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킴벌 선생은 잘 알려지거나 크게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성격이 소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무디를 만났을 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디가 나의 주일학교 반에 입학하였을 때에 나는 그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처음 보았다. 더구나 어떤 일에 유용하게 쓰일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디 역시 한 동안 교회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벌 선생은 가난한 무디가 실의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겨 어느 날 무디의 구두 가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가게 뒷방에서 둘은 함께 무릎을 꿇고 무디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 자리에서 무디는 깊은 감동 중에 드디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어 나중에 세계적인 전도자가 된 무디는 평생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3개의 학교를 세웠고, 체계적인 신학 훈련을 받지 못했는데도 미국과 영국에서 기독교를 크게 부흥시켰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은 큰 신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1888년 게일이라는 선교사가 한국을 향해 떠나기 바로 전날, 51세의 무디는 게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지의 나라로 향하는 한 젊은이를 이렇게 격려했다고 합니다. "자네가 조선으로 간다지. 내 자네를 위해 기도할 걸세!" 또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들 가운데 하나인 마포삼열, 윌리엄 블레어, 그레이엄 리, 스왈른, 찰스 번하이젤, 그리고 윌리엄 헌트 역시 무디의 부흥 운동을 경험하고 복음의 열정에 불타 조선으로 달려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킴벌 선생이 실천한 작은 사랑이 무디에 영향을 주었고, 무디에 자극받은 여러 젊은이들이 선교사가 되어 조선에까지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는 한국교회도 킴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상당수가 믿음의 스승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이 킴벌 선생으로 연결될지도 모릅니다.
빌리 그레이엄 역시 1952년 12월 전쟁 중인 한국을 찾아와 부산에서 집회를 하였으며, 그 뒤 1973년 5월에는 여의도 광장에 모인 100만 군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는 그의 생애에서 경험한 최대의 인파였던 탓에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단순히 군중의 숫자로 이 집회의 성격을 크게 미화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지만, 하여튼 당시 한국교회 교인 수가 불과 300만 정도였음을 고려해 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사상 최대의 집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쨋든 이때 집회에 초청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즉석에서 결신을 하였고, 전국적으로도 전도 운동의 열기가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 킴벌 선생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무디나 빌리 그레이엄같이 역사적인 인물들을 회심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가난한 자기 반 학생 하나가 딱해 보여서, 그를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작은 사랑이 큰 일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바로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 셈이 된 것입니다.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것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결점이 많고, 약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셔서 강한 자를 찾으실까요. 아니면 돈이 없으셔서 부자를 찾으실까요. 또한 지식이 없으셔서 똑똑한 사람을 필요로 하실까요. 그러실 이유가 없으실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도 처음에는 설교가 하도 신통치 않아, 그의 설교 시간이면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옥스포드대학교의 모임에서 설교할 때는 "우리 대학교에 불이 붙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뜨거운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변화된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가슴을 움켜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교회들이 요한 웨슬리를 크게 비방하였는데, 그 이유는 요한 웨슬리가 교회의 사치와 목사들의 타락을 사정없이 비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아마 오늘날의 한국 귀족 교회들과 사정이 매우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영국 교회에서 요한 웨슬리의 설교를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인 화이트 필드의 도움으로 킹스우드 지방 광부들에게 교회 대신에 야외의 넓은 언덕에서 즉석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그대로 불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청중이 2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다섯 번째 설교할 때는 그곳에 1만 명이 훨씬 넘었고, 그 다음엔 1만 8,000명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를 불렀습니다. 어느 지방에서는 2만 명이 넘는 숫자가 집회장을 가득 메우기도 하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가 신통치 않았던 웨슬리를 통해 이렇게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나중에 웨슬리가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 그에게는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 주전자, 그리고 다 낡아 빠진 코트 한 벌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도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쩌들어 말주변조차 제대로 없던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중책을 맡기셨고, 보잘 것 없는 시골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겁약하여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실이 너무 한탄스럽고 가슴 아파 크게 통곡을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한 마음을 멸시치 않으시고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하루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예를 다 들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약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가난하다거나, 너무 삶의 짐이 무겁다거나, 너무 배우지 못했다거나, 너무 나이가 많다거나, 너무 겁약하다는 등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이유들이 물론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약하고 힘들고 낙심해서 좌절할 그때에도,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할 그때에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주님 앞에 완벽하게 설 수 있을까요. 물론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죄인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게으르고, 소심하고, 욕심이 많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시기하고, 영육으로 무지하고, 그리고 매우 이기적인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주 작은 사랑조차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닌지요.
돌이켜 보면, 우리들에게는 거창한 일만을 좋아하고 큰 일만을 성취하려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것에 너무 몰두해서 작은 일을 소홀히 하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다 잘나고, 우쭐대고, 허영에 들뜨고, 허세를 부리고, 헛된 꿈을 꾸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심으로 추구해야 할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을 한번 살펴보면, 분명히 해야 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킴벌 선생처럼 한 주일학교 학생을 사랑으로 돌본다거나, 소외된 사람을 찾아 위로해 준다거나, 따돌림을 받는 형제의 친구가 되어 준다거나, 아니면 끼니를 걱정하는 이를 찾아내 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작은 일을 한 가지라도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예수를 따른다는 우리라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우리 신자들은 강함과 교만의 모습을 버리고, 약함과 겸손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돈이 부족해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고, 힘이 없으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세상이 어지러운 지금이야말로 겸손, 온유, 절제, 경건, 나눔, 섬김 등 우리가 잃어 가고 있는 이런 소중한 가치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우리처럼 아주 평범했던 한 주일학교 교사의 작은 사랑과 열정이 소년 무디를 변화시켰고, 후일 전 세계 수천만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소년 빌리 그레이엄을 회심시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나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로 회심한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시 스스로 새로운 제자들을 만들어 가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사도행전 후편을 계속해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킴벌 선생이 시작했던 이 작은 일이 이제는 큰불이 되어, 아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온 누리로 계속 번져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라 확신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왔고, 베드로가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질그릇 같은 우리들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큰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다 무디나 빌리 그레함이엄같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킴벌이 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헛된 꿈을 꾸며 큰 불꽃이 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작은 불꽃이 타오르면 자연히 큰불이 일어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인은 많은데, 제자가 적다"라는 안타까운 탄식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킴벌처럼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불태울 참된 주님의 제자들이 구름같이 일어나게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뉴스앤조이 제휴기사)
올려짐: 2010년 1월 09일, 토 11:57 pm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 신성남 = 킴벌(E. Kimbal)은 보스턴에 있는 한 작은 교회 '마운트버농 회중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였습니다. 1858년 어느 날 구두방에서 일하는 자기 반 학생을 직접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기도하는 중에, 결국 그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습니다. 그 가난한 학생의 이름이 바로 후일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어 미국을 감동시킨 무디(D. L. Moody)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결신자는 겨우 소년 한 명
이렇게 회심한 후에 전도자가 된 무디는 21년 후 런던을 방문하여 큰 전도 집회를 열었고, 거기에 참석했던 메이어(F. Meyer)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뒤 목사가 된 메이어는 미국에 가서 설교하였고, 그 모임에서 채프만(J, Chapman)이 회심하였습니다. 그리고 YMCA에서 일했던 채프만은 야구 선수였던 썬데이(B. Sunday)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된 썬데이는 함(M. Ham)을 강사로 초빙하여, 노스캐롤라이나 샬로트에서 3주간이나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신자는 겨우 16세의 소년 한 명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거의 실패한 집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소년의 이름이 훗날 전세계 수천만 군중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빌리 그레이엄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한 주일학교 교사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위의 내용은 수년 전 필자가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던 짧은 글을 일부 수정하여 다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당시 어느 외국 책자를 무심코 뒤적이다가 이런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이렇게도 역사하시는구나" 하며 한동안 잔잔한 감동에 잠기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킴벌 선생은 잘 알려지거나 크게 영향력 있는 인물도 아니었고, 오히려 성격이 소심하고 신경이 예민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무디를 만났을 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디가 나의 주일학교 반에 입학하였을 때에 나는 그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처음 보았다. 더구나 어떤 일에 유용하게 쓰일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디 역시 한 동안 교회 생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킴벌 선생은 가난한 무디가 실의에 젖어 살아가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겨 어느 날 무디의 구두 가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가게 뒷방에서 둘은 함께 무릎을 꿇고 무디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그 자리에서 무디는 깊은 감동 중에 드디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되어 나중에 세계적인 전도자가 된 무디는 평생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3개의 학교를 세웠고, 체계적인 신학 훈련을 받지 못했는데도 미국과 영국에서 기독교를 크게 부흥시켰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은 큰 신앙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1888년 게일이라는 선교사가 한국을 향해 떠나기 바로 전날, 51세의 무디는 게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지의 나라로 향하는 한 젊은이를 이렇게 격려했다고 합니다. "자네가 조선으로 간다지. 내 자네를 위해 기도할 걸세!" 또한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들 가운데 하나인 마포삼열, 윌리엄 블레어, 그레이엄 리, 스왈른, 찰스 번하이젤, 그리고 윌리엄 헌트 역시 무디의 부흥 운동을 경험하고 복음의 열정에 불타 조선으로 달려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킴벌 선생이 실천한 작은 사랑이 무디에 영향을 주었고, 무디에 자극받은 여러 젊은이들이 선교사가 되어 조선에까지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는 한국교회도 킴벌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중에 상당수가 믿음의 스승들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이 킴벌 선생으로 연결될지도 모릅니다.
빌리 그레이엄 역시 1952년 12월 전쟁 중인 한국을 찾아와 부산에서 집회를 하였으며, 그 뒤 1973년 5월에는 여의도 광장에 모인 100만 군중 앞에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는 그의 생애에서 경험한 최대의 인파였던 탓에 세계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단순히 군중의 숫자로 이 집회의 성격을 크게 미화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지만, 하여튼 당시 한국교회 교인 수가 불과 300만 정도였음을 고려해 볼 때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사상 최대의 집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쨋든 이때 집회에 초청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즉석에서 결신을 하였고, 전국적으로도 전도 운동의 열기가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마 킴벌 선생 스스로도 자신이 이렇게 무디나 빌리 그레이엄같이 역사적인 인물들을 회심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가난한 자기 반 학생 하나가 딱해 보여서, 그를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작은 사랑이 큰 일의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바로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킨 셈이 된 것입니다.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것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하고, 결점이 많고, 약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일을 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셔서 강한 자를 찾으실까요. 아니면 돈이 없으셔서 부자를 찾으실까요. 또한 지식이 없으셔서 똑똑한 사람을 필요로 하실까요. 그러실 이유가 없으실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도 처음에는 설교가 하도 신통치 않아, 그의 설교 시간이면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옥스포드대학교의 모임에서 설교할 때는 "우리 대학교에 불이 붙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뜨거운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변화된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은 가슴을 움켜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교회들이 요한 웨슬리를 크게 비방하였는데, 그 이유는 요한 웨슬리가 교회의 사치와 목사들의 타락을 사정없이 비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더니, 아마 오늘날의 한국 귀족 교회들과 사정이 매우 비슷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많은 영국 교회에서 요한 웨슬리의 설교를 일체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더 큰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친구인 화이트 필드의 도움으로 킹스우드 지방 광부들에게 교회 대신에 야외의 넓은 언덕에서 즉석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그대로 불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청중이 2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다섯 번째 설교할 때는 그곳에 1만 명이 훨씬 넘었고, 그 다음엔 1만 8,000명이 몰려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말씀에 굶주린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를 불렀습니다. 어느 지방에서는 2만 명이 넘는 숫자가 집회장을 가득 메우기도 하였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홍수처럼 밀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가 신통치 않았던 웨슬리를 통해 이렇게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나중에 웨슬리가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 그에게는 두 개의 숟가락과 하나의 찻 주전자, 그리고 다 낡아 빠진 코트 한 벌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도 약하고 부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쩌들어 말주변조차 제대로 없던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이끄는 중책을 맡기셨고, 보잘 것 없는 시골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겁약하여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사실이 너무 한탄스럽고 가슴 아파 크게 통곡을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한 마음을 멸시치 않으시고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변화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하루에 3,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예를 다 들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자신이 너무 부족하고 약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다른 이유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가난하다거나, 너무 삶의 짐이 무겁다거나, 너무 배우지 못했다거나, 너무 나이가 많다거나, 너무 겁약하다는 등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이유들이 물론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약하고 힘들고 낙심해서 좌절할 그때에도,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할 그때에 하나님은 일을 시작하시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누가 주님 앞에 완벽하게 설 수 있을까요. 물론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다 죄인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게으르고, 소심하고, 욕심이 많고,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시기하고, 영육으로 무지하고, 그리고 매우 이기적인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늘 바쁘다는 핑계로, 아주 작은 사랑조차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닌지요.
돌이켜 보면, 우리들에게는 거창한 일만을 좋아하고 큰 일만을 성취하려는 좋지 않은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것에 너무 몰두해서 작은 일을 소홀히 하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많은 것을 맡기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두가 다 잘나고, 우쭐대고, 허영에 들뜨고, 허세를 부리고, 헛된 꿈을 꾸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전심으로 추구해야 할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의 주변을 한번 살펴보면, 분명히 해야 할 작은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킴벌 선생처럼 한 주일학교 학생을 사랑으로 돌본다거나, 소외된 사람을 찾아 위로해 준다거나, 따돌림을 받는 형제의 친구가 되어 준다거나, 아니면 끼니를 걱정하는 이를 찾아내 밥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이 반드시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작은 일을 한 가지라도 꾸준히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예수를 따른다는 우리라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와 우리 신자들은 강함과 교만의 모습을 버리고, 약함과 겸손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돈이 부족해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고, 힘이 없으셔서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세상이 어지러운 지금이야말로 겸손, 온유, 절제, 경건, 나눔, 섬김 등 우리가 잃어 가고 있는 이런 소중한 가치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우리처럼 아주 평범했던 한 주일학교 교사의 작은 사랑과 열정이 소년 무디를 변화시켰고, 후일 전 세계 수천만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할 소년 빌리 그레이엄을 회심시키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디나 빌리 그레이엄의 전도로 회심한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시 스스로 새로운 제자들을 만들어 가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 사도행전 후편을 계속해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킴벌 선생이 시작했던 이 작은 일이 이제는 큰불이 되어, 아마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온 누리로 계속 번져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라 확신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왔고, 베드로가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질그릇 같은 우리들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큰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 모두가 다 무디나 빌리 그레함이엄같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킴벌이 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헛된 꿈을 꾸며 큰 불꽃이 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작은 불꽃이 타오르면 자연히 큰불이 일어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교인은 많은데, 제자가 적다"라는 안타까운 탄식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킴벌처럼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을 불태울 참된 주님의 제자들이 구름같이 일어나게 되기를 꿈꾸어 봅니다. (뉴스앤조이 제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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